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카와 큐지 (문단 편집) == [[일본프로야구]] 시절 == [[파일:external/sportiva.shueisha.co.jp/0831fujikawa-001.jpg]] 1998년에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로 인해 이 드래프트 지명자들을 마쓰자카 세대라 일컫는다.] 1순위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원래는 [[선발투수]] 자원으로 입단하였고 체격이 일본의 투수치고는 나름 좋은 편이라 구단에서도 그렇게 기대를 한 모양이었지만, 초기의 후지카와는 기대에 못 미치는 평범한 신인이였다. 입단 당시엔 최고 구속도 고작 145km/h였다. 본격적으로 1군에 정착한건 대략 2002년이었는데, 이때부터 2004년까지는 성적이 매우 저조했다. 2004년 초반까지는 1, 2군을 왔다갔다 했는데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 시절 2군 코치인 야마구치 타카시[* 일본프로야구 최다안타(3,085개) 기록 보유자인 [[장훈(야구선수)|장훈]]에게 3,000안타가 되는 홈런을 허용했다.~~[[허용투수]]~~] 에게 본격적인 투구폼 개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한큐 브레이브스]] 황금기를 이끌던 속구파 투수였던 야마구치는 후지카와의 폼에 쓸데 없는 부분이 많고 릴리스 포인트가 너무 뒤인 것을 발견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한 것.[* 유투브에 후지카와의 수정 전/후 투구폼이 나오는데, 공 릴리스 시 오른 쪽 다리가 일찍 구부려져 낮은 점을 발견하여 다리를 펴게 해 릴리스 포인트를 높이게 한 것이 적중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잘 안 알려졌으나 이 이후에도 2010년 후반기등 종종 이 시절의 폼으로 회귀하는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구위가 여지없이 하락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같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로 인해 구위를 잃어버렸던 [[기쿠치 유세이]]의 경우도 비슷한 교정으로 구위를 되찾았다.] 원래부터 컨트롤은 좋은 편이였고 구속만 따라온다면 완벽하다고 본 그는 원래 선발자원인 후지카와를 [[중간계투]]로 전향시키고 1~2이닝 특화형 투수로 길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이후 후지카와가 던지게 된 전매특허 강속구이다. 2004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중계진의 한축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개화한 후지카와는 2005년 대폭발. 한신의 필승조 [[JFK(한신)]][* [[제프 윌리엄스]]-후지카와 큐지-[[쿠보타 토모유키]].]의 일원으로서 7승 1패 1[[세이브(야구)|세이브]] 46[[홀드(야구)|홀드]] [[방어율]] 1.36의 후덜덜한 성적을 찍으며 일약 일본 최고의 중계투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무려 '''80경기 등판'''으로 일본 투수 등판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최우수 중계투수 타이틀까지 덤으로 거머쥔다. 2006년에는 원래 마무리 투수였던 [[구보타 도모유키]]가 부상을 당한 시기에 임시 [[마무리 투수]]로 기용된다. 이후 한신의 마무리 투수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해 기록한 스탯은 무려 평균자책점 0.68 7승 무패 17세이브 30홀드. 거기다 79이닝 동안 탈삼진 122개를 잡는 등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08년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지 3년만에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하여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였다. 이 당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있던 [[이병규(1974)|이병규]]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것이 유일한 패배. 2010 시즌엔 세이브 28개로 세이브 부분 4위 방어율 2.01으로 무난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요미우리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2차전 경기에서 8회초 1점차 상황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아놓고 다음타자인 가메이에게 볼넷, 오가사와라에게 2루타, 라미레스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퐈이야!(...) 덕분에 한신은 가을야구를 광탈하게 되었다. 마무리가 블론세이브 하는 거야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8월 이후로 페이스가 떨어지며, 제구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2011 시즌엔 통산 100홀드를 기록해 사상 최초로 100홀드-100세이브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4년만에 40세이브 고지에 올라 최종 41세이브로 통산 2번째 세이브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해 FA자격을 취득했지만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한신에 잔류했다. 2012 시즌엔 48경기에 나와 24세이브 47.2이닝 58탈삼진을 기록했으며 해외 FA자격을 취득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